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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빈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장례위 제공
인권·평등 담은 ‘유엔헌장’ 신봉하며 청년 때부터 진보적 민족주의 실천 초교만 나온 농민·노동자 출신에도 그 어떤 지식인과 논쟁서 안 물러서 다방면 걸친 그 많은 독서 경이로워노년에도 대부분 진보운동 현장 참여 현대사 전반 해설·논평 담은 선집도 권오헌(1937~2025·4·25) 선생님. 선생께서 일생 동안 쟁취하고자 투쟁했던 민족 주체적인 한반도 평화정착과 민주화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이 봄날에 기어이 훌쩍 떠나시는 겁니까. 언제라도 찾아가면 태영건설 주식
부둥켜안고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도 형제애와 동지애를 흠씬 교감할 기회조차 이제는 영영 사라져 버린 겁니까. 형은 서른살이고 제가 26살 때 처음 만났으니 옹근 58년간 쌓아온 실타래처럼 감긴 인생행로가 아아, 이렇게 무상하게 끝나는 겁니까. 그 무렵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났던 분은 박현채, 박중기 선생과 빌리 브란트주의자라 불렀던 사회민주주의자인 통일사회황금성배당줄
당 김철 대표 등으로 당대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 문인, 민주화와 통일운동가들을 찾아 지성의 철새처럼 쏘다니던 호시절이었지요. 선생은 통일사회당에 입당해 몇몇 부서를 돌아가며 책임 감투를 쓰고 당세 확장에 진력했습니다. 선생은 농민운동으로 유명한 홍성에서 태어나 궁핍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하여 불도저 운전 면허증을 획득해 너무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 자신바다이야기 황금고래
이 불도저 한 대를 샀지요. 전국을 쏘다니며 성실하게 노동을 한 덕분에 지금은 금싸라기 땅인 서울 강남 신사동 네거리(지하철 신사역) 바로 가까이에 독신용으로 걸맞은 맞춤한 아파트까지 사서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어 주었습니다.
고인의 빈소. 장례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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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식에서 필자가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장례위 제공
추모식에는 함세웅, 이부영, 이재오 등 고인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한 민주화인텍플러스실적발표
운동 원로들이 많이 참석했다. 장례위 제공
함세웅 신부가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장례위 제공
무교동의 한 술집이 떠오릅니다. 넉넉한 안주와 술로 뜻 맞는 인사들과 회합할 수 있었던 곳으로 일부 진보적인 인사들의 단골집이었지요. 가끔은 외설담이 나오기도 했는데 형은 그 분야에는 전혀 관심을 안 보여 의아하게 여겼지요. 왜 선생이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권오헌 결혼추진위원회’까지 결성하여 온갖 뜸을 다 들였지만 실패한 이유가 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참다못해 제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수염만 갖다 붙이면 딱 호찌민이야!” 진보적인 민족주의자로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호찌민은 작고한 뒤 온 세계 언론들, 심지어 격전 중이었던 미국을 비롯해 제국주의의 본산인 유럽은 물론이고 베트남에 파병까지 했던 레드 콤플렉스의 종주국인 우리나라 언론들조차 찬양해 마지않았던 인물입니다. 체구, 외모, 단순 소박 검소한 생활, 진솔성, 투지와 의지, 보잘 것 없는 학력(특수학교 중퇴인 호찌민이나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선생은 일치)에다 독신이고 인간미가 넉넉했던 점 등등이 너무나 신통하게 닮았지요. 사실 선생은 그 짧은 가방끈에도 어떤 저명 지식인과도 논쟁에서 물러선 적이 없는 무불통지였습니다. 다방면에 걸친 그 많은 독서를 어떻게 했는지 놀랄 지경이었지요. 농민·노동자 출신이란 배경이 책상물림 지식인들에게는 경이로웠습니다.
추모식 모습. 장례위 제공
청년 시절부터 선생은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남녀 및 대소 국가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촉구”한다는 유엔헌장 신봉자였습니다. 이에 따라 강대국(특히 미국)의 횡포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이고, 그 제국주의 질서에 복종하는 게 후진국의 독재체제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족의 살길은 오로지 민족주체적인 공동체 의식이란 신념으로 친일파 청산을 바탕으로 민주 통일운동에 전력투구했던 게 남민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진보적인 민족주의의 실천이었지요. 남민전으로 옥고를 치르고 1982년 출소한 이후부터 선생에게는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투옥 중인 동지들과 전두환 군부독재 치하에서 엄청나게 불어난 투옥자(양심수) 석방운동에 투신하다가 선생이 양심수후원회 회장(1991)을 맡으면서 유독 정성을 쏟은 분야는 비전향 장기수들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전후부터 1990년대까지 옥살이를 해 온 장기수들은 온 세계가 칭송하는 넬슨 만델라보다 훨씬 가혹한 처우에 징역 기간도 더 길지요. 이들이야말로 8·15 이후 분단 한국의 갈등과 모순에 정면 대결해 투쟁했던 산증인들이지요. 국내외적인 여론에 떠밀려 이 장기수들이 서서히 석방됐지만 그들 중에는 이미 가족이 완전히 분해되어 버리거나 북한 출신자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들에게 보금자리(만남의 집)를 마련하는 데 앞장서면서 장기수의 대부란 영예를 얻었습니다. 특히 2000년 9월에는 각고의 노력으로 63명의 장기수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친족을 찾아 북한으로 송환하게 된 것은 가히 남북화해의 일대 경사였지요. 만년의 권 선생은 진보운동, 특히 미국의 만행과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빈민과 농민 및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의 야전사령관처럼 노구를 무릅쓰고 거의 모든 현장에 앞장섰습니다. 그런 중에도 놀랍게도 현대사 전반에 대한 개략과 해설에 논평까지 곁들여 쓴 글을 묶어 두차례 선집까지 냈지만 여전히 엄청난 원고가 산적해 남아 있습니다. 이 많은 활약으로 지칠 만도 하건만 형은 의식이 있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을 이었지요. 존경하는 우리 시대의 영원한 청춘 투사 권 선생님. 이제 삼도천을 건너면서 이 한반도 남부의 모든 문제 풀어 놓고 이미 저승에 미리 간 그리운 동지들과 재회의 기쁨 누리시기를 못난 후배가 간절히 빕니다.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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