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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AI 이미지 ⓒ제주의소리


나처럼 택시 운전사가 직업인 사람은 고질적인 운명론자가 되기 쉽다. 무슨 말이냐고?
하루 동안 돈을 얼마나 버는지 여부는 쉬지 않고 얼마나 부 농협 학자금대출 상환 지런히 뛰느냐 보다는, 어느 시간에 어느 방향으로 차를 모느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운전 경험에 비춰 어느 시간대에는 어느 쪽으로 나가야 손님이 많더라, 이렇게 머리를 써서 출동해 봐도 교통량이 많다보면 거리 사정이 혼잡해 시간만 오래 끌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손님이 많아 보이는 위치에서는 다른 택시들도 많이 출동하기 마련이어서 손님 잡기가 더 생애최초주택자금대출승계 어려울 수도 있다. 성질 고약한 손님을 만나면 공연히 택시요금이나 애매한 노선 선택을 두고 쓸데없는 실랑이가 붙어서 시간만 허비할 때도 있다. 손님이 시내 지리를 잘 몰라서 목표지를 잘못 말한 뒷감당을 운전사에게 뒤집어씌우는 어이없는 일도 일어난다. 
"난 택시 운전사가 부러워. 하루 벌이가 자기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잖아."
한국씨티은행노선버스 운전사인 친구 놈의 주장은 천만의 말씀이다. 노선버스 운전사는 노동하는 시간에도 머릿속은 어디에 얽매어있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 공상을 즐길 수 있고, 그런 시간에는 시내구경을 하면서 세상 변하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지 않겠는가. 택시 운전사에게는 그렇게 마음 편한 자유시간이 별로 없다고 당당히 말해본다.
내가 마흔 살 가까 공무원신용불량자 운 나이에 아직도 결혼을 못한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약한 의지력이다. 수십 번이나 맞선을 보았고 그 중에는 내가 만족할 만한 배우자감도 몇 번 만날 수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과 이유를 핑계로 성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시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 월복리란 렇게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결혼 기회를 여러 번 놓치고 보니,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이 낳은 운명론적 자기변명에 빠진 것만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내가 과감한 자기 결단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운명론적인 나약함에 빠졌기 때문에 결혼 대사를 성립시키지 못했고, 운명론자가 된 것은 일찍부터 택시 운전 직업을 택한 것이 계기였다는 참으로 완벽한 귀결이다. 
물론, 나와 같은 운명론자도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령 배우자감으로 적합한 여자로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할 적에, 그 두 여자 가운데에서 누구를 최종 낙점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남자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배우자감으로 나타난 여자가 단 한 사람이라 할 때에도 그 여자를 과감히 최종 낙점하는 결단력은 결국 그 남자 본인에게 달려있다. 나는 결국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완벽한 운명론자는 존재할 수 없고, 나와 같은 운명론자의 경우에도 인간 자신의 결단력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언젠가 택시 안에서 우연히 듣게 된 교양방송 중에는 그리스신화 오이디푸스대왕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방송의 내용이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야기 가운데에 운명론자가 가야할 바른 길 같은 것이 암시돼 있다는 생각이었다. 
갓 태어난 왕자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는 아폴로 신전에서 전수받은 신탁을 통해서 자기 아들 오이디푸스가 부왕(父王)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끔찍한 운명임을 알고 이를 피하기 위해 무리한 수단 방법을 쓰지만, 이 같은 무리수가 오히려 운명적인 비극을 완성하는 길을 만들어준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를 통해서 얻은 교훈은, 운명이 아무리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역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운명의 길은 거역하는 것 자체가 천벌 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처럼 평범한 인생에서 오이디푸스에게처럼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그저 나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인생행로라는 조그만 힌트만 있어도 그것에 거역함이 없이 이를 순종하면 될 일이었다. 오이디푸스 비극의 경우에, 아무리 불행한 운명이라도 이를 감수한다는 대원칙대로만 했더라면, 그것이 비극을 모면하는 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인간사란 확실해 보였던 운명적인 방향과는 반대의 길로 나갈 경우도 있고, 확실한 예견이라는 것이 잘못 전해질 수도 있었지 않은가. 하여간에 인간의 어리석은 개입으로 자초한 비극이야말로 더욱 억울하고 비참할 것 같다. 
혼사 결정은 운명이 가리키는 대로 따르자고 결심한 다음에도 내가 준비해야할 것이 있었다. 운명이 정해준 나의 배필감이 어떤 여자인지는 미리 알고 있어야만 그런 여자가 덜컥 나의 앞에 나타날 때에는 '아, 이 여자가 나의 운명의 동반자이구나' 하고 손을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택시 손님으로 오는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을 참고해, 배필감이 될 만한 여자의 부류를 선별해 두기로 결심했다. 
배필감을 선별하는 기준은 여자의 겉모습을 놓고도 대충 세워볼 수 있다는 나만의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학력, 직업, 얼굴, 어느 것 하나 번듯하게 내놓을 것이 없는 처지에 스스로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우선 뛰어난 미모이거나 화려한 차림새의 여자는 제외됐다. 불쾌감을 주거나 가엾을 정도의 초라한 여자만 아니면 되었다. 나하고 운명적으로 연을 맺을 수 있을 여자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에는 헤어스타일도 큰 몫을 하였다. 머리 염색을 하거나 장발머리를 늘어뜨리거나 덥수룩한 머리를 헤어핀으로 동여맨 것 같은 스타일은 나의 선별 기준에서 제외됐다. 그런 여자는 자신의 진짜 얼굴과 성격의 본색을 숨기고 있는 이중인격자일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일은 내가 대충 정해놓은 선정 기준에 들어맞는 여자가 나의 배필감으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점쟁이를 통해서 나의 배필감을 알아본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나의 일생일대의 중대사 결판이 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배필감이 어떤 여자일지는 나 자신의 꿈속에서도 나타날 것만 같았는데,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나는 매우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 세계의 내 동과 생각은 실지로 완성돼 나타난 하나의 건축물이라 할 때, 현실 세계에서 건축물을 건조하다 남은 폐기물 같은 것이 꿈속 장면에 나타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꿈은 의식 활동이 정지된 순간이며, 꿈 속 장면에 나타나는 것은 깨어있을 동안의 심리상태에서 만족시키지 못한 본능의 파편들이라는 나만의 믿음이 있었다.
이런 해몽법에서 꿈속 장면은 그 사람의 과거사의 굴곡된 재현이겠지만, 언제부터인지 꿈속에서는 과거사만이 아니라 미래사에 대한 예시적 장면도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미래의 삶을 오롯이 품고 있을 나의 배우자의 모습이 내가 꾸는 꿈속에 어렴풋이 비치지 않겠는가. 내가 온 정신력을 모아서 그려보고 동경하는 미래의 배필인데 내 꿈속에 그 희미한 힌트 정도라도 나타날 것만 같은 행복한 상상을 해봤다. 
운명의 여자를 만나는 꿈이 한 동안 이어지면서, 드디어 꿈속에서 내 기억을 선명하게 재생시키는 인상적인 얼굴과 만났다. 꿈속에서 흔히 보듯이 흐릿하고 희미한 윤곽만을 보여줄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놓은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꿈속 운명의 여자와 조우한 순간은 불원간에 찾아왔다. 
장소는 내가 잘 다니는 시청 옆의 **영화관이었는데 그곳에서 초등학교의 동창생, 미숙이를 만났던 것이다. 미숙이는 그 당시에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들 중에서 제일 많이 기억에 떠오르는 여자였다. 꿈속에서 잠시 본 것만으로도 옛날 기억의 보따리를 쫙 풀어 제친 듯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마음속 깊이 묻혀있던 간절한 그리움이 운명의 길을 트이게 한 것만 같았다. 
어릴 적에 내가 미숙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 애가 미인이거나 공부 우등생이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같은 동네에 살았고 자주 만나기 때문이었으니, 지금 이 여자의 사회적 신분도 내가 넘보지 못할 정도로 높지는 않을 것이고, 얼핏 생각에도 내가 세워놓은 배필 기준에 모두 합당할 것만 같았다. 그 시절에 내가 미숙이에게 먹을 것도 가끔 사주고 여러 차례 같이 놀았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정도 되니,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이 여자는 나의 배필감으로서 적격일 것이라는 커다란 믿음마저 부풀어 올랐다.
나는 오전 중에 시내 거리에서 손님 태우기를 대강 마친 다음, 지체없이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가슴 콩닥거리는 관람 시간이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실망하려고 하던 차에, 상영관을 나오며 만난 사람은 나의 꿈속 장면이 헛방이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바로 미숙이의 사촌오빠인 김기철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기철이도 내 초등학교 동창이니까 그녀에게 대해 비교적 마음 놓고 물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운명의 길이 있겠냐는 기쁨과 대견함이 다시 한 번 몸을 휘감았다. 난 다짜고짜 기철이를 영화관 휴게실에 끌어 앉히고서 신속한 순발력을 발휘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 동창과의 소통에 너무 소홀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쉬지 않고 늘어놓았다. 다행히 그 녀석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다른 선약이 있다고 해서 짧게 끝내고 헤어지기는 했지만, 미숙의 근황을 대강 알아내는 데까지는 차질이 없었다. 
나는 지체 없이 서둘렀다. 미숙의 직장은 인근 면사무소라고 했는데 택시를 몰고 가면 30분도 안 걸릴 거리에 있었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가다보니, 오후 두 시가 넘었지만, 미숙이는 사무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들뜬 마음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언젠가 싶은지,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랄 정도였다. 오늘 영화관에서 우연히 기철이를 만났고, 옛날 동네친구였던 너의 근황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얘기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리고 때마침 택시 손님이 가자는 방향이 이 쪽이었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얼마쯤 얘기가 오고간 끝에 미숙은 잠시 주저한 끝에 겸연쩍은 듯이 말을 꺼냈다.
"초등학교 동창들에게도 결혼청첩을 보내야 하나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만난 사람에게야 말하지 않을 수 없다야. 나 다음 달에 결혼해."
내가 축하한다는 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와중에도 정신력이 크게 흐트러지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헤어지면서 '헤어핀이 잘 어울린다'는 뚱딴지같은 말을 불쑥 꺼낸 것은, 내가 생각해도 빠져나간 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탓이겠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나만의 운명론이란 것이 얼마나 개똥같은지, 헛다리짚는 망상이었는지 부끄럽고 창피스러웠다. 이날 이후 나는 머리에서 운명이란 말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행동은 눈앞에 주어진 현실세계가 확실하게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면 될 일이 아닌가. 의지나 노력과는 별개로 운명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는 것부터가 시간낭비라는 생각은 나 자신마저 놀라게 했다. 설령 운명이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이 자기의 운명인지 알아보려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운명은 지나고 나서야 '아, 이것이었구나' 하고 돌이켜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숙이의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 장면을 보면서 힘껏 박수를 쳐줬다. 아마도 철없던 나에게 성숙한 운명 불신론을 심어준 데에 대한 감사의 박수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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