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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안녕하시냐’고 묻는다. 내 피붙이거나, 친한 친구들이거나, 혹은 아직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그 누구든 간에. ‘안녕하시냐’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심하게 뒤틀린다. 그 단순한 물음이 내 귀엔 전혀 울림이 없다. 되레 어떻게든 피하려 하는 곳으로 나를 질질 끌고 간다. 왜냐하면, 솔직히, 나는 전혀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지내는 것과 정말 거리가 멀다. 가자지구에 있는 사람 모두가 그럴 것이다.”
작가 림 하마다카는 2025년 5월17일 미국 중동 전문매체 몬도와이스에 맞이하였다 보낸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나고 자란 하마다카는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19개월을 넘어선 전쟁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 상실의 무게, 가자 주민 전체의 상실감이 매 순간 가슴을 짓누른다. 아무리 큰 사랑도, 세심한 배려도, 마음속 짐의 무게를 줄여주지 못한다. 숨 농협 공인인증센터 을 쉴 때마다 떠나간 가족이 그립다. 그럼에도 고통을 밖으로 드러낼 순 없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슬픔은, 가자에서, 사치재다.”



2025년 5월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아흐메드 샤라아 시리아 임 농협 농특세 시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힘을 통한 평화’ 펼침막 앞 일장연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13~16일 중동 순방길에 올랐다. 집권 2기 들어 나선 첫 국빈 방문이다. 방문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3개국이다. 미국 대통령이 중동 순 집값 하락 방길에 으레 들르는 이스라엘은 방문지에서 빠졌다. 백악관 쪽은 5월16일 보도자료를 내어 “트럼프 대통령은 2조달러가 넘는 막대한 거래를 성사시키며 첫 국빈 방문을 엄청난 성공작으로 마무리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6천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카타르와 맺은 투자 및 경제교류 계약 규모는 1조2천억달러에 이른다. 아랍에미리트와는 2천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 여성대출 켰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방문길엔 현지 경제계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를 발표했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카타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4억달러짜리 최신형 항공기를 선물하겠다고 나섰다. 아랍에미리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순방지마다 공군 전투기가 트럼프 대통령이 탄 전용기를 호위했고, 아랍식 전통 환영행사가 화려하게 되풀이됐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5월17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순방 기간 내내 자신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존경과 존중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썼다.
“이번에 순방한 중동 3개국과 맺은 거래 총액은 최대 4조달러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사우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3개국의 국부펀드 총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2조달러든, 4조달러든 모두 장기간에 걸친 ‘약속’에 불과하다. 현실화할 수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일부 ‘거래’는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이란 지적도 나온다. 2조달러든, 4조달러든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과장이 섞인 주장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다. 카타르 방문길에 찾은 중동 최대 미군기지인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하듯 연설했다. 연단 뒤편엔 ‘힘을 통한 평화’라 쓰인 대형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2025년 5월20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로 진입하는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전차 위에서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순방지에서 이스라엘 뺀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순방 기간에 맞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군사작전의 강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 하마스 간 휴전협상이 열리고 있는 카타르에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한 5월14일에만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세로 가자 전역에서 최소 8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5월16일 트럼프 대통령이 탄 ‘공군 1호기’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출발할 무렵, 이스라엘군은 가자에서 지상군 작전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미 2주 전부터 예비군 수만 명에게 추가 동원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가자지구 점령 통제를 위한 작전명 ‘기드온의 전차’가 본격화할 참이었다.
“가자지구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 아부다비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5월15일 튀르키예 방문길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한 뒤 한 인터뷰에서 “미국도 가자지구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무감각할 순 없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은 가자지구 주민이 처한 상황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순방지에서 이스라엘이 빠진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간 ‘갈등설’이 불거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쟁 19개월째, 가자지구는 여전히 심각한 기금 위험에 처해 있다. 인도적 구호물품도, 민간 상업용 물품도 가자지구 진입이 전면 차단된 채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은 이미 바닥났거나, 곧 바닥을 드러낼 상황이다. 가자지구 주민 전체가 심각한 만성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2025년 5월21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에 자리한 무료 급식소에서 깡마른 어린이가 깡통에 배급을 받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실제 ‘폭탄보다 무서운’ 굶주림이 가자를 휘감고 있다. 유엔이 식량 위기의 심각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특정 지역의 식량 상황을 ‘정상-경고-위기-비상-재앙·기근’ 5단계로 분류한다. 이 단체는 2025년 5월12일 펴낸 최신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인구의 22%에 해당하는 47만 명이 기근(5단계)에 허덕이고 있다. 100만 명 이상(54%)은 비상(4단계) 상태, 그나마 상황이 나은 나머지 약 50만 명(24%)도 위기(3단계)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가자 주민 22% 기근, 54%는 비상상태
이 단체가 2024년 10월17일 내놓은 같은 보고서를 보면,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당시에도 가자지구의 굶주림은 심각한 상태였지만, 기근(5단계)에 직면한 주민은 13만3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비상(4단계) 상태인 인구는 66만4천여 명 수준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유로메드 인권감시’는 5월20일 낸 자료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9명을 포함해 모두 26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 굶주림과 만성적인 영양실조 등으로 노약자와 어린이, 환자 사망률이 위험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해할 목적으로 굶주림을 무기화하고 의료 지원을 차단한 이스라엘의 의도적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전했다.



2025년 5월2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예루살렘의 총리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전과 달리 지금부턴 가자지구에서 공격에만 집중한다. 작전지역 내에서 결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공격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에피 데프린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5월18일 성명을 내어 지상군 5개 여단(1개 여단에 3천~5천 명)이 투입된 ‘기드온의 전차’ 작전이 개시됐음을 알리며 이렇게 밝혔다. 굶주린 땅에 다시 폭력이 차고 넘치기 시작한다. 이날 하루에만 이스라엘군의 공세로 가자지구 전역에서 주민 15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5월18일 밤 가자지구에 대한 ‘기본적 인도지원’을 즉각 재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시내각의 표결도 거치지 않은 채였다. 극우파는 거세게 반발했다. “ 네타냐후 총리가 엄중 한 실수를 저질렀다. 내각의 다수파가 동의하지 않는 짓을 했다. 하마스를 짓밟겠다면서 그들에게 산소를 공급해줘선 안 된다. ”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성명을 내어 이렇게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정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에 굴한 것일까? 현지 일간 ‘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 의 5월19일치 보도를 보면 딱히 그렇진 않아 보인다. 신문은 “총리실의 인도지원 재개 발표가 나온 직후 ‘ 고위 당국자' 명의로 된 성명이 취재진에게 배포됐다. 인도지원 재개는 ‘ 일시적 조치 ’이며, 신규 구호품 배급소가 설치·운영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길어야 일주일 정도에 그칠 것이란 내용이었다. 배급소는 이스라엘군이 확보· 통제하는 가자지구 남부를 중심으로 설치될 것이며, 미국 민간기업이 운영을 맡을 예정 ” 이라고 전했다.



2025년 5월20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서 주민들이 수레를 타고 피란길에 오르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굶주림에 지친 이주’ 강제하는 노림수
애초 ‘기본적 인도지원’ 허용은 이스라엘 전시내각이 5월4일 만장일치로 채택한 3단계 ‘기드온의 전차’ 작전 계획에도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3개국 순방 기간에 맞춰 공세를 대폭 강화해 가자지구를 점령·통제하는 게 1단계다. 이어 2단계에선 대대적인 주민 대피령을 내려 가자 주민 전원을 최남단 라파 주변으로 몰아간다. 마지막 3단계는 라파 일대로 몰린 주민들에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식량만 제공한다.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에게 ‘자발적 이주’를 강제하기 위해서다. 인도지원 재개 첫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진입을 허용한 구호품 트럭은 단 5대였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1단계 휴전(1월29일~3월1일) 기간에 가자로 들어간 구호품 트럭은 하루 평균 약 600대였다. 톰 플레처 유엔 인도주의·긴급지원 조정 담당 사무부총장이 “가자에서 긴급하게 필요한 구호품 규모가 바다라면, 그 바다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린 꼴”이라고 한숨을 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593째를 맞은 2025년 5월21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5만3655명이 숨지고 12만195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