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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자고 모습을 혜주도 너무도 목소리로 가져올게요.하고“그가 나를 있게 한 것도, 내가 그를 있게 한 것도 아닙니다. 친구이고, 70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온 동행이지요.”



서울 양천구 자택 서재에서 유종호 문학평론가가 고(故) 신경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새재’ 초판(1979년)을 들어 보였다. 맨 앞 장에는 ‘유종호형 신경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종호 선생은 “‘농무’ 초판도 어딘가 있을 텐데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며 웃었다. /박성원 기자


1세대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유종호(90)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고(故) 신경림(1936~2024) 시인은 문단에 잘 알려진 70년 지기(知己)다. 22일 신경림 시인 한국장학재단 대학원 장학금 1주기를 앞두고 유종호 선생의 서울 양천구 자택을 찾았다. 그가 기억하는 신경림에 대해 들었다. 어떤 인연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필요가 없다.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진득해진다.
◇고교 선후배에서 70년 文友로
유종호는 신경림의 충주고 1년 선배다. 고교 시절부터 서로 존재를 알았다. 1955년 서울대 문리대에 재학 선광LTI 중이던 유종호는 서울 종로 거리 한복판에서 신경림과 재회한다. “누가 딱 와서 자기가 신응식(신경림의 본명)이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신경림은 동국대 영문과를 다녔다.
1956년 ‘현대문학’의 아성에 도전하던 문예지 ‘문학예술’에 신경림의 시가 처음 실렸다. 신경림은 이 소식을 유종호에게 알리기 위해 그가 있을 법한 다방으로 한달음에 달 목돈모으기 려왔다. 둘은 1년간 하숙도 같이 했다.



고교 시절 두 사람의 은사였던 정춘용(가운데)씨와 함께 1980년대에 찍은 사진. 왼쪽이 유종호, 오른쪽이 신경림. /유종호 제공


‘문학예술’로 문단에 입성한 신경림은 시 지 금계산기 망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신경림의 초기 시 세계는 박목월과 김춘수가 융합된 서정적인 세계였어요. 당대 문단 분위기는 모더니스트 또는 참여론자들이 나팔을 불 때란 말이에요. 시 지망생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문단에서는 별로 언급도 안 되고 냉대를 받았습니다.”
◇“신형, 시로 다시 돌아가라”
울산학자금대출가뜩이나 기운이 빠져 있던 때, 가세도 기울었다. 신경림은 시골로 내려가 방황했다. 신문사 장편소설 공모에 두 차례 투고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가 쓴 ‘초부전(樵婦傳)’이라는 단편소설을 본 유종호는 이렇게 조언했다. “이건 정말 재미가 없어. 신형은 아무래도 소설은 맞지가 않아. 그러니까 시로 다시 돌아가라.”
신경림이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한 건 1965년 시 ‘겨울밤’을 발표하면서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 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이 시를 본 유종호는 신경림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시만 가지고 시집 한 권을 내면 대번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시를 발표해라. 없더라도 써서 내라.” 그리고 창작과비평사(창비)에 신경림을 소개했다. 창비 시선(詩選)의 첫 시집으로 ‘농무’가 출간됐다. ‘겨울밤’은 시집의 첫 시로 실렸다. 신경림은 창비의 간판 스타이자, 197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의 서재에서 찾은 고 신경림 시인의 시집과 시 전집. /박성원 기자


◇ 정치·문학관 달라도 이어진 우정
유종호 선생은 ‘민중 시인’이라는 분류를 내켜 하지 않았다. “문학을 ‘민중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자제감을 갖고 있습니다. 문학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찬성도 안 합니다. 다만 문학이 정치에 복속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유종호는 신경림의 시를 “슬픔의 사회적 차원”이라고 칭했다. “쉬운 언어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과장 없이 노래하고 공감해주는 시인”이라고 했다.
2022년 유종호 평론가가 시집 ‘충북선’을 내자 신경림이 전화를 걸어왔다. “형은 역시 시인이야” 칭찬하더니 ‘유종호의 시는 오늘의 우리 시가 놓치고 있는 많은 대목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발문을 썼다. 유종호 평론가는 지난 3월 비평선 ‘고전과 키치의 거부’를 펴냈다. 여전히 펜을 놓지 않고 있다. 신경림 시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글 쓰고 싶다”고 중얼거렸듯. 유종호 평론가는“스무 살 버릇이 아흔까지 가는 거지 특별할 것 없다”고 했다.



유종호 문학평론가가 본지 인터뷰에서 신경림 시인과의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토록 막역한 사이였으나 두 사람은 정치적 입장과 문학관이 달랐다. 그러나 신춘문예, 문학상 심사를 같이 할 때면 의견이 대개 일치했다고 한다. “어째서인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70년 친구라니까(웃음).” 그리고 덧붙였다.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좋은 문학인데, 거기(정치·문학관)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요.”
◇유종호가 기억하는 신경림의 말
남북정상회담 시낭송 부탁받자 “그건 안 해. 나 그러면 안 가.”
어느 문학상 심사 후 밥을 먹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건 안 해. 나 그러면 안 가.” 평소 사람 좋기로 유명한 신경림이 단호하게 말하더니 전화를 딱 끊었다. 신경림 시인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에 동행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정상회담 때 북한에서 시 낭송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 시인은 정상회담에는 동행했으나 끝내 시 낭송은 하지 않았다. 유종호 선생은 “정치적으로 시가 이용되는 것에 단호히 거절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